우리는 이대로,
우리는 이대로, 멈춰선 모습이 아름답다. 서로 가벼이 가까워질 수 없는 모습이 아름답다. 등 너머 소통하며 하루를 나누고 얕은 마음을 공유한다. 한 걸음 다가설 때, 한번 더 껍데길 벗기려 할 때, 우리의 마지막은 여지없이, 추해진다. 우리는 이대로, 등 돌린 모습이 아름답다. 귓속말로 나누지 못하고 뜨겁게 안을 수 없기에, 곁에 두고 떨어져 바라는 시선에, 그 모습이 눈물나도록 아릅답다. 아름다워 흘리는 그 눈물 조차,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는 이대로, 당장 끝나버려도 서글플 수 없는 동행. 평행히 나아간다, 다가서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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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사과
헐벗은 살에 따가운 공기 내려앉아 비틀려 뜨겁게 붉던, 햇빛을 닮은 노오람도 모두 잃은 채, 심지어 물 한 방울 없이 짜다 내던져버린 걸레 마냥 뒹굴다 찔러도, 깨물어도, 반토막 내보아도 서걱댈 뿐인, 속살이 노출되는 순간, 관음의 시선과 타인의 목마름에 촉촉함이 도려내져 메말라버린, 사과 혹은 수많은 사과들. 그래도, 다행이다, 난. 아직은 덜 벗겨져, 쥐어짜지 않아도 뚝뚝 물 흘릴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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