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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스 안에서





1.
직장 동료와의 탑승.
 간간이 오가는 대화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렇게 둘 사이 떠돌다 동료를 따라 하차한다, 환승도 안 찍고.
돈이 많은 녀석인지, 무임승차를 생활화하는 녀석인지- 생각하려는데 
내 무릎위에도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녀석을 발견한다.
네모난 버스 한 대, 못해도 20명은 족히 넘게 타는데 
그 안에서 짧은 안녕마저 나눌 수 있는 사람 없다.
멋쩍게 창밖을 바라보며 아니, 보는 척 하며 귓구멍을 이어폰으로 막아버린다.
▶ 


2.
퇴근시간 버스엔, 당연한 일상이 되었지만, 사람이 빈자리 하나 없게 버스를 한가득 메꾼다.
그래도 한 자리 차지해 입안에서 노랠 흥얼거리며 엉터리 박자를 두들겨 댄다는게 
하루의 끝이 다가오는 시점에선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내릴 정거장이 다가옴에 따라 엉겨붙어 있는 사람들의 그 틈을 
어떻게 비집고 문을 향하여 카드를 찍고 무사히 버스 두 계단 한 턱을 내릴 지.
이제 하도 오래봐서 관찰의 리스트에서 지워버린 길에 접어들어 
눈 감고도 집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아는 곳에 다다를 때면 걱정은 이--만큼이나 커져서 
앉은자리에서 지금 일어날까 말까, 다음 정거장에서 일어날까 따위를 반복하게 된다.
다행히 지하철 역 앞 정거장에서 우루루 떼지어 내린다.
휴.


3.
몰랐는데, 내 자리 바로 옆 기둥 하나 붙잡고 서 있는 실루엣이 
곁눈질로 몰래 볼 땐 장터 나갔다 돌아오는 양 손에 보따리 한아름 들고 계신 어머니였는데 
용기 내 스을쩍 쳐다보니 하얀 이어폰으로 나처럼 두짝 귀를 막고 있는 또래뻘 키작은 숙녀였다.
계속, 어색히 창 밖 붉은 조명들에 눈을 맞추며 자릴 비켜드려야 하나, 참으로 못난 고민 하고 있었는데..
못난 놈.


4.
기사아저씨 뒤 기둥에 또다른 숙녀가 의지한다.
확실한 의지도 아니고 한쪽 팔만 걸터놓고 있다.
한 손엔 분홍빛 핸드폰과 조그만 수첩, 한 손엔 유명 커피브랜드의 테이크아웃 커피.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막힌 도로 한 가운데서 일렁이는 버스에 
커피도 흔들리고 몸도 흔들리고 짙은 갈색 눈동자도 흔들리고,
덩달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흔들린다.
흔들흔들.


5.
벨을 누르고 일어나 간신히 손잡이 하나 잡는다.
백발에, 얼굴도 하얀 기사아저씨와 어느 할머니의 대화가 오가는 중이다.
어디어디로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고 이러이러한 횡단보도를 몇개 건너야 하는지 쯤, 틀어막힌 귀에 들리진 않지만.
뻔한 드라마나 소설은 아니어도 이름 모를 사람과사람, 손님과기사 
둘 사이를 오갈 대화는 제한적이니까.
내 틀어막힌 귀엔 이름만 아는 사람 목소리 건조히 울린다.
아메, 아메, 아메, 아메, 아메.
      

6.
삐빅.
카드를 다시 대 주세요.
삐빅.
카드를 다시 대 주세요.
삐빅.
생각을 다시 해 주세요.
여기서 내려도 괜찮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