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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내일 598호 Photo Story - '증명'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입가에 반쯤 미소를 머금고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 3×4㎝의 이 사진을 우리는 증명사진이라 부르며 이력서, 각종 신분증에 사용한다. 그런데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사진이 있고, 모든 사진이 카메라 앞에서 일어났던 장면을 ‘증명’한다. 구태여 반명함판의 이 조그만 사진에만 증명이란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사진은 증명사진이다. 카메라 앞에 존재했던 인물과 공간, 흐르던 시간과 빛 등은 사진으로 남아 그 현장을 증명한다. 포토샵을 통한 보정이 있어도 카메라 앞에서 일어났던 오리지널 사건의 존재는 변함이 없다. 이미지를 완전히 새로 그려내거나 오려 붙인 합성이 아닌 이상 말이다. 해당 사진에 보이는 그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진은 언제나 증명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상반신을 담은 사진만 증명사진으로 부르는데, 거기엔 증명의 쓰임새를 대조와 식별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흔히 증명사진을 이력서, 주민등록증 등에 부착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안경 너머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력서를 훑는 면접관과 미심쩍은 눈초리로 어려 보이는 손님으로부터 주민등록증을 건네받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증명사진과 인물의 식별/대조 작업이다. 이때, 사진과 얼굴이 불일치한다고 판단되는 순간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불일치의 이유를 인물의 성형, 혹은 시간의 흐름에서 찾을 수도 있는데 단순히 대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증명사진은 증명의 역할을 잃게 된다. ‘증명=식별’이란 이상한 공식을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지금의 증명사진의 절대성은 의심스럽다. 우선 얼굴 사진만 인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인물 간 차이점을 찾기에 얼굴이 편하긴 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얼굴이 아닌 특별한 부위만으로 사람이 구분되는 일도 허다하다. 20년 전 잃어버렸던 자식을 찾았을 때 “그때 허벅지 안쪽에 큰 점이 있었어”라는 식으로.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특이한 헤어스타일, 본인만의 의미를 부여한 문신이나 상처 등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다. 요즘은 사진 보정 기술과 성형의 발달로 얼굴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바꿀 수 있기에 어느 순간 찍었던 상반신 사진만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건 불합리한 일이다. 인체 아닌 특정한 그 사람만의 물건으로 누군가를 식별할 수도 있다. 화재나 비행기 추락 같은 큰 사고로 형체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유품을 통해 일차적으로 한 사람의 존재를 알아챈다. 아버지의 시계, 연인의 재킷 등. 기성품이라도 독특하게 낡은 모양새로도 서로 구분할 수 있다. ‘어떤 사항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힘.’ 증명의 사전적 의미다. 진실의 대상은 가지가지. 커다란 보라색 부츠에서 한때의 내 취향을 ‘증명’하고, 연필을 쥔 내 손은 공부에 대한 내 노력을 ‘증명’하고, 꼭 마주 잡은 남녀의 두 손은 연인의 사랑을 ‘증명’한다. 만약 세월이 흘러 내 신발 취향이 변하고, 공부 열의가 식고 사랑이 끝난다 해도 사진은 추억을 상기하면 한때의 진실을 증명하고 만다.

이쯤에서 인물 식별만을 위한 증명사진은 증명이란 수식어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작은 사진, 큰 사진, 추상적인 사진, 흔들린 사진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증명하기에 바쁘다. 우리가 알고 있던 3×4㎝의 작은 증명사진은 진정한 증명의 의미보다 훨씬 좁은 의미에서 쓰이고 있었다. 이제 증명사진이라는 과장된 이름이 아닌 식별사진으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대학내일 598호 Photo Story
['증명'하는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