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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예전에, 한창 감수성이 끓어오르던 시절에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자주 기록하던 다이어리 중에            
아직 똑똑히 기억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아니, 하나의 문장이라기보단 여러개의 문장이 하나로 소리내어 말하던 것이 있다.           

'시간을 붙잡고 싶다'           


짧은 내 일생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힘겨웠던 겨울, 스스로를 다독이며 쓰던 다이어리엔            
질서없는 입시생의 흔한 푸념과 자책과 분노 등 지금은 두손가득 오글거리는 글이 잔뜩이다.           
허나,           
집착이라면 집착이랄까 하나의 공통된 어조에서 지나치지 못한 채 다시 읽고 되새김질 한다.           
형체없는, 공기보다 추상적인 시간을 어떻게 가득 붙잡을 수 있을까.           
어리석은 생각.           


그 어린 시절,           
지금보다 더 징글징글한 개구장이였고 장난기 가득했던 아이는,           
스스로를 철들었다 생각했고 후회하는 것을 싫어했고 확실한 것을 원했으며 여유를 갈구했던 아이는            
시간과의 긴 여정을 함께 해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 초침까지 아울러 지구 몇바퀴를 돌았을까.           


지나간 세월 끄트머리에 자리한 한 아이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투영시켜본다.           
길을 따라 걷다 오랜만에 스친 하나의 인연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변함없이 똑같다는 말은 거짓이다.           
뜨뜨미지근한 걸 죄악처럼 생각하던 스스로가 이미,           
세상 가장 뜨뜨미지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미국 시트콤의 한 장면,           
문을 열면 한명씩 꼭 껴있을 법한 소파에 반쯤 누워 팝콘을 먹으며 티비를 보는 뚱뚱보.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바라 본 나는.           
설렘도 기쁨도 신남도,           
무엇보다 중요한 꿈과 열정 없이 회색 빛 감정을 껴 안은 채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을 걸었다.           
어느 시점, (추측컨대, 한 사람의 방이 허물어짐과 동시에)           
사랑을 노래하고 받는 법도 잊은 채            
가슴 속 뜨거움을 잃었으며 깊숙이 우는 법도, 웃는 법도 잊었다.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원하는 일만 즐길거라 떵떵거렸지만            
정작, 그것이 무언지도 찾지 못한 채로.           


과거는 추억을 기워냈다.           
그렇다면,           
오늘은 무엇을 써 나갈까.           
나는,           
저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떳떳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