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모든 하나
남자는 펜을 든다. 잉크는 아직 절반 정도 남아, 시시콜콜한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 써내려 가기엔 충분한 양이다. 한 여자가 있다, 있었다.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과 영원히 남겨지는 것. 그리고,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것. 그 끝엔 항상 그녀가 서 있었다. 어쩐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내 사라지지 않을 상 같다. 남아있는 것, 남겨진 것. 그에겐 그것이 오직 전부다. 아무리 주워 담아도 결국엔 오롯한 그녀 하나다. 낑낑대며 붙잡으려 애써 봐도 고작 아련한 실루엣만이 남아 그 고운 선에 거친 손으로 기억을 덧 댈 뿐인, 그녀 하나다. 펜을 놓쳐, 뚜껑도 채 닫지 못한 모습으로 잠이 든다, 꿈에 잠긴다. 꿈 속에, 한 여자가 서 있다. 그녀가, 있다. 양수처럼 차진 허공을 헤엄쳐 그는, 그녀를 끌어 안는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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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대로,
우리는 이대로, 멈춰선 모습이 아름답다. 서로 가벼이 가까워질 수 없는 모습이 아름답다. 등 너머 소통하며 하루를 나누고 얕은 마음을 공유한다. 한 걸음 다가설 때, 한번 더 껍데길 벗기려 할 때, 우리의 마지막은 여지없이, 추해진다. 우리는 이대로, 등 돌린 모습이 아름답다. 귓속말로 나누지 못하고 뜨겁게 안을 수 없기에, 곁에 두고 떨어져 바라는 시선에, 그 모습이 눈물나도록 아릅답다. 아름다워 흘리는 그 눈물 조차,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는 이대로, 당장 끝나버려도 서글플 수 없는 동행. 평행히 나아간다, 다가서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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